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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뒷북 | 2009/07/03 06:20

가버린 계절, 여름을 그리며 가을을 앓는다

지난 금요일이었죠. 밤늦게 TV를 틀어보니, 자우림,이 나오더군요. 그들의 곡은 좋아하지만, 음반을 구하거나 하지는 않고, 그저 잘 알려진 곡들만 알고 있는 정도, 가끔가다 노래방에서 불러볼 정도, 젊은 남자 고교생 밴드에서도 "미안해 널 미워해"등을 멋지게 카피한다는 정도, 그정도만 알고 있었기에 이번 앨범이 6집이었다는 것도 모르는 채 EBS Space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는데, 허, 이 친구들, 있었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고 지내오던 제 가슴을 그냥, 턱, 치더군요,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는 우리 노래 부르고 있는데, 너는 왜 혼자서 엄살이니, 하는 표정으로, 제 가슴을 함부로, 턱, 치더군요.

Summer Slumber 라는 노래였습니다. 아, 가슴 설레던 여름 그여름... 아, 아름다웠던 여름 그여름.

그리고는 어쩔 수 없이 옛 생각이 났습니다. 학교 뒤 숲에서, 처음 보는 졸업생 선배들과 어울려, 동아리방에서 의자 들고와 모닥불 피우면서, 그 모닥불 꺼져갈 때, 선배들 울먹이며 부르던 노래. "꿈결 같던 대학시절 어디로 가버렸나. 여름이여, 여름이여허. 가버린 젊음이여. 이젠, 이젠 너를 그리며 가을을 앓는다."

하, 여름, 가버린 젊음. 그리고 가을을 앓음.

청승이었죠. 늙은 선배들이 학교에 와서, 이제 막 입학한, 파릇파릇하고 생그러운 젊은이들 데리고 가을을 앓는다니, 여름이 가버렸다니. 청승이었죠. 그리고 제 눈에는 그 선배들이 멋있었고, 부러웠죠. 청승인줄 알면서도, 저 또한 그런 정서를 부러워하는 감성의 시절이었기에.

아, 가슴 설레던 여름 그여름... 아, 아름다웠던 여름 그여름.

저도 어서어서 늙어버리고 싶었습니다. 광기와 열정의 불안하고 어수선한 질풍노도의 시기일랑은 어서어서 보내버리고, 건너뛰어버리고, 차분하고 여유로운, 각박하지 않고 생을 즐길 수 있는, 그런나이, 늙은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계절은 가을도 지나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30대도 중반을 지나 더 이상 청년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 나이에 젊어보이려 애쓰는 것은 아름답지만은 않을 터입니다. 중년의 무게감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어울릴 터입니다. 그러다보면 그토록 애타게 원하던 늙은이가 어느덧 되어 있을것입니다. 그 전에 세상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저는 지금 철도 지난 가을을 앓고 있습니다. 가슴 설레던 여름, 아름다웠던 여름. 가버린 젊음을 그리며, 가을을 앓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노래 한 곡 때문에, 빌어먹을 노래 두 곡 때문에.

*** *** ***

덧붙임)
몇년전, 버스를 타고 가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위 노래를 들었습니다. 어, 선배들이 부르던 노래와 가사가 조금 다르네. 우리는, 젊어 세상을 떠난 선배, 떠나고 나서 뒤늦게 시집 한 권 묶어낸 그 선배가 만든 곡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뒤로 잊고 지내다 이번 기회에 찾아보았습니다. 장영희라는 가수가 부른 "가버린 계절"이더군요. 이후 남궁옥분 등도 다시 불렀다고 하는. 친절하지 못해서 링크를 걸어두지 않습니다만, 역시 옛 노래는 이 광대한 네트의 세계에서도 찾기가 어렵군요, 찾기가 어렵군요.

by 뒷북 | 2006/12/18 23:04 | 감상문, 혹은 | 트랙백 | 덧글(2)

[연습일지-출근] 우울, 마라톤 이후

지지난 일요일 마라톤 대회 다녀온 후로는, 단 하루 20분 트레드밀에서 달린게 전부, 달리기와 담 쌓고 지내는 날들이다. 목표하기로는, 아침 출근 전에 달리기, 퇴근후 밤에 트럼펫 연습, 이렇게 생활하는 것인데, 그 치열한 연습의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것인데, 열흘동안 20분 달리기는 너무 초라하다.
당일 나보다 월등히 좋은 기록으로 풀코스를 완주한 분들중 다수가, 지난 일요일의 다른 풀코스 대회에 또 참가하신 것으로 알고 있고, 그 가운데 한분은 또, 2주 뒤의 100Km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예정인데, 이럴때면 나는 뭔가, 하는 생각으로 우울해진다.
당장 오늘만 해도 그렇듯, 아침 운동을 거르게 되는 대개의 이유는,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힘들다거나, 아침 일찍부터 회사 등의 일들이 있어 운동하기에 적당한 일정이 아니라는 식의 납득할만한 이유보다는, 그저 십분만 더 하다가 그만 늦잠을 자버려서, 지각이나 면할 정도로 부랴부랴 출근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 그대로 의지의 박약, 인 경우여서, 오늘아침 출근길부터 우울했다.
집은 3호선 남부터미널역, 회사는 2호선 선릉역. 남부터미널→교대→선릉이면 4정거장밖에 되지 않지만, 출근길의 2호선이란, 내가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잊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상황이어서, 남부터미널→도곡→선릉(분당선)의 경로를 택한다. 그래도 오늘같은 경우는 화물을 갓 면한 수준의 수송이었지만.
지하철 역 계단을 오르며, 앞서가는 아가씨의 종아리나 힐끗거릴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올리다 그만, 고개를 너무 높게 들어버린 덕에, 출구 너머 빌딩 너머 살짝 드러난 가을하늘을 봐버렸다. 그 좁은 사이로 눈부시게 눈에 들어온 가을하늘 한 쪽에, 갑자기 그만 기분이 좋아져버렸다.
도시의, 고마운 가을하늘.

by 뒷북 | 2006/11/07 09:47 | 일기, 혹은 | 트랙백 | 덧글(4)

[연습일지-달리기] 대회 후 회복훈련

대표적인 마라톤 사이트 www.marathon.pe.kr에서 대회후 회복에 대한 글을 찾아읽다. 이러저러한 말들, 가령 대회의 1Km당 10Km로 회복주 연습하면, 그러니까 약 420Km를 달린 후에는 다시 대회에 참가할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등등의 이러저러한 말들은 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몸에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먹어라", "특정한 음식이 먹고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먹어라" 등등의 내용만 눈에 박힌다.
그동안 참고 참아왔던 쏘주를 마실 때인가.

by 뒷북 | 2006/10/30 21:41 | 일기, 혹은 | 트랙백 | 덧글(0)

[연습일지-달리기] 2006 춘천마라톤 참가

30Km 지점. 2시간 45분 43초.
마라톤은 30Km 부터 시작이라는데, 나는 25Km 지점에서부터 슬슬 마라톤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2년전에도 서상2교를 오르는 25Km~26Km 지점에서부터 장경인대염이 도져 걷기조차 힘들었는데, 오늘은 그래도 나름 가볍게 오른다 싶더니, 그게 사실은 오버페이스였나보다. 초반 10초 빠르게 달리면 후반 10분이 늦어진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초반에 10초 느리게 달린다고 후반 10분은 커녕 5분도 당길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참고삼아 손목에 두르고 있는 3시간 49분 페이스 표보다 조금 느리게 달리고 있으니,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작년 기록 (3시간 54분 18초) 전후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어서, 게다가 심박수도 160대 이상을 오르지 않고 있으니,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아닐 것인데, 생각보다 많이 힘들다. 출발전에 만난 포테이토 형님께서 주신 파워젤은 26Km 지점에서 먹었던게, 생각보다 강한 포도당 젤이 한꺼번에, 염증이 있는 내 식도를 지나면서 속도 쓰리기 시작했고, 생수 마시며 씻어내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그 덕에 힘은 나는 것일테다. 헌데, 평소에도 그렇듯 숨은 차지 않는데, 다리-허벅지에 아까부터 느껴지던 피로는 점점 통증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도 이 페이스면 작년보다 더 좋은 기록으로 마칠 수도 있는 것이다. 힘내자.
34Km 지점 직전, 영화 "말아톤"으로 유명해진 샤워터널이 나온다. 작년/재작년 모두 이 구간을 지날 때에, 물 맞기가 싫어서 멀찌감치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도 정면으로 맞고 지나가기는 싫어서 조금 떨어져 갈까 싶었는데, 이런, 샤워가 위에서 뿌려지는 것 말고도, 옆에서 쏘는 물줄기도 있었다. 시원스레 물은 맞지도 못하고, 옆에서 쏘는 물줄기에 몇 차례 강타당하다.
35Km 지점. 3시간 17분 21초
작년 기록은 아무래도 무리. 이대로라면 수정목표인 4시간도 쉽지만은 않을 듯 하다. 다리는 너무나도 묵직하고, 통증이 심하고, 살짝살짝 무릎이 꺾일듯 하다. 매 5Km마다 충분히 급수를 했는데도,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오고, 제 속도로 달리기가 어렵다. 하지만, 마라톤 벽은 지금 나타나는게 맞다. 나 뿐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걷기 시작하지 않는가. 한가지 다른 점은 첫 풀코스 참가때 만났던 마라톤 벽은, 딱딱한 벽돌벽 바로 그 자체였는데, 오늘 만난 마라톤 벽은, 그 재질이 스폰지여서, 그럭저럭 뚫고 지나갈만 한 것도 같지만, 갈수록 그 저항이 거세지는 것이다. 그래도 달린다. 첫 풀코스때에도 걷다 달리다를 반복했지만, 결국 나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거의 걷는듯한 속도로 꾸준히 달리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나를 추월하지 않았던가. 속도를 확 낮추어 달린다.
36Km 팻말을 보는 순간, 갑자기 의지가 무너져 내린다. 아니, 무너진 것은 내 체력이었고, 내 의식은 내 몸을 보호하려 하고 있었다. 다시 장경인대에 부상을 입고싶지 않았고, 무릎에 걸린 하중은 단련된 근육으로 분산되지 않고 그대로 누적되어, 난생 처음 느끼는 피로가 통증으로 전달되고 있다. 마라톤 벽을 만났을 때, 의지로 뚫고 지나가는 것이 올바른 대책이겠지만, 마라톤 대회의 1차 목표는 늘 부상없는 완주였기에, 잠시 걷기로 한다. 걷기 민망할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응원해주고 있지만, 그래서 나는 진작에 선글라스를 마라톤 대회 필수 용품으로 준비하지 않았던가. 이들 가운데 나를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여느해와 달리 102 보충대 앞에서 군악대의 응원연주가 없던 것을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37Km를 지나며, 군악대를 만나다. 그렇지, 30Km 지점에서의 응원보다는, 여기가 훨씬 힘이 되는 법이지. 악기 편성을 보며 지나가고 있는데, (곡명은 모르겠다. 흔히 듣던 곡이었는데.. 빠빠- 빠라빠- 빠라빠- 하는.. ==;) 맨 앞줄은 섹소폰이다. 그 옆은 클라리넷인지 소프라노 섹소폰인지 모르겠는데, 그러고보니 둘 다 목관악기인데도 브라스 밴드에 속해있다니, 둘 중 어느 것이어도 말이 안되긴 마찬가지다. 트럼펫은 두번째 줄에 트럼본과 함께.
37.5Km 스폰지 지점을 지나면서, 피식,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마라톤 동호회 밴드의 연주가 있다는 안내를 얼핏 본 기억은 있었는데, 지금 그들은 "Highway Star"를 연주중이다.
Nobody gonna take my car
I'm gonna race it to the ground
Nobody gonna beat my car
It's gonna break the speed of sound
힘들고 지친 마라토너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곡이긴 했는데, 이런, 지금의 내 속도는 어떠한가. Km당 7분도 훌쩍 넘긴, 뛰다 걷다의 속도가 아닌가.
40Km지점, 3시간 56분 32초
벌써 작년 기록이다. 다리는 너무 아파서, 의지로 조정되는 단계를 지나 걷다 달리다를 반복하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달리는게 더 낫다는 생각에 계속 달리려 하지만, 무릎에 오는 충격과 통증으로 겁이난다. 그래, 4시간 10분에라도 들어가면 되지, 그래도 첫 춘천 마라톤 기록에 비하면 1시간 이상 빠른게 아닌가. 작년보다 연습을 게으르게 했으니 당연한게 아닌가. 마라톤만큼 정직한 운동이 또 어디있겠나. 많은 사람들이 당일의 컨디션을 무시하고, 자신의 평소 실력만 생각하다 결국 대회중 사망사고까지 일어나지 않던가. 무리하지 말자, 무리하지 말자. 오늘의 기준도, 결승점을 통과하고 나서 힘이 남아있거든 부끄러워 하자, 였는데, 이미 내 근육에는 남아있는 힘이 없지 않은가. 내 다리에 저장되어 있는 작년의 기억은 이미 레이스 초반부에 다 꺼내 쓰지 않았던가. 무리하지 말자, 무리하지 말자.
41Km 지점을 지나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초입에서, 누군가 "뒷북님" 하며 내 등을 떠민다. 돌아보니 아까 30Km 지점 께에서 내가 인사하며 추월해갔던 후리댄서 님이다. 힘내라며 내 손을 잡아끌며 달리시는데, 순간, 어디선가 힘이 솟는다. 그래 이대로 달려 트랙까지 돌자, 하는 생각에 몇m 달리는데, 생각보다 힘이 남아있었군, 느끼는 순간, 또 다리가, 무릎이 말이 아니다. 후리댄서님 먼저 보내드리고 다시 내 페이스로 달리기 시작한다. 초입에서 운동장 직4문까지의 거리가 이렇게 멀었던가. 응원나온 시민, 참가자 가족들을 바라보며 선글라스의 고마움을 재차 느끼고 직4문을 통과한다. 여기서부터는 트랙. 경기장 내의 어딘가에 있는 전광판으로 중계가 될텐데. 하지만 이 짧은 3/4 트랙을 달리는 와중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추월해간다. 마지막 1Km의 전력질주는 커녕 마지막 100m도 느릿느릿, 걷는 모습만 간신히 벗어난 속도로 달려 결승점을 통과한다. 4시간 13분 43초.
결승점에는 역시 많은 수의 사진사가 촬영을 하고 있다. 두 팔을 들었다가, 한 팔만 주먹쥐어 들었다가, 사진에는 속도며 기록이 나오지 않으니까 최대한 멋지게 보이려 노력하고, 스톱워치 누르는 촌스런 장면이 찍히지 않도록 기록도 무시하면서 (어차피 나중에 다 보내주니까) 결승점 통과하다. 조금 떨어져서 후리댄서님이 기다려 주시고.
대충 앉아서 챙겨온 빵과 나눠준 물 등을 마시고, 돌아오는 버스로 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내가 이짓을 다시는 하나 봐라."
그 분이 다시 풀코스 마라톤에 참가한다는데 걸겠다, 나는.

by 뒷북 | 2006/10/29 21:08 | 일기, 혹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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